일을 치르고 난 다음날 아침은 늘 비슷하다. 평소보다 뻑뻑하고 무거운 눈꺼풀과 허리 아래로 느껴지는 둔한 통증, 나른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끔하게 닦인 몸.

 "잘 잤어?"

 저 혼자만 단정하게 옷을 갖춰 입고 미소짓는 단정한 얼굴.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몇 번 깜빡이고 고개를 끄덕이자 눈가에 어린 온기가 한층 짙어진다. 말로 대답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서로 신경쓰지 않는다. 쉰 목소리가 나올 게 뻔하니까. 당연하다는 듯이 건네주는 물잔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언젠가 그냥 찬물로 괜찮다고 말했지만 딱 잘라 거절당했다. 라이넬은 가끔 사소한 데서 이상할 정도로 고집을 부리곤 하는데, 이럴 때는 뭐라 말해도 소용이 없다. 별것도 아닌 일인데 저쪽은 절대 물러설 생각이 없으니 얌전히 받아 마시는 수밖에. 물을 다 마시고 나면 잔을 받아 치우고 한쪽에 잘 개켜둔 옷을 챙겨 건네준다.

 "...고마워."

 "천만에."

 상태가 조금 나아진 목을 울려 인사를 주고받으면 여기까지 평소대로다.

 에렌델은 옷을 받아들면서 새삼 떠올렸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라이넬과 잔 다음날, 그의 흐트러진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 사실이 묘하게 짜증을 불러 일으켰다. 왜 나만? 아침이 되어서도 일어나기 힘들고, 혼자 흐트러지고, 눈 붓고 목 쉰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시중까지 받아야 하는 건데? 이건 정말 불공평했다. 모름지기 연인이라면 상대방을 챙겨주고 싶어하는 것이 당연하다. 라이넬이 저를 챙겨주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다. 하지만 어떻게 단 한 번도, 내가 챙길 틈을 안 주냐고. 혼자 체력 넘친다고 시위하냐? 그런거냐? 에렌델은 인상을 팍 찌푸리며 받아든 옷을 옆에 내려놓았다.

 "더 자려고? 많이 피곤한가."

 조금 의아한 목소리가 들리거나 말거나 에렌델은 손을 까딱였다.

 "잠깐 와 봐."

 조금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가까워지는 녹색 눈동자를 빤히 응시하던 에렌델은 그 숲에 제 얼굴이 온전히 담기지 못할 정도로 라이넬이 가까워졌을 때, 손을 뻗었다.

 "에렌델, 왜 그... 억?"

 라이넬의 목에 팔을 휘감고, 의문을 표하는 틈을 타 침대로 확 끌어당겼다. 그 라이넬이 완전히 경계를 풀고 있다가 걸려든 것도, 제 위로 엎어지며 전해지는 무게감도. 모든 것이 유쾌했다. 그래서 웃었다. 흰 코트가 구겨지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넘어뜨린 연인의 목을 단단히 끌어안고, 단정하게 빗어놓은 갈색 머리카락을 손으로 마구 흐트러뜨리며 아직 쉰 채인 목소리가 뒤집어지거나 말거나 깔깔 웃었다. 조금 버둥대는 듯하던 움직임은 에렌델이 숨이 넘어가도록 웃는 새에 멎었다. 얌전히 안겨 있는게 마음에 들어서 에렌델은 조금 더 웃었다. 숨이 가쁜 것마저 유쾌했다.

 "뭐가 그렇게 웃긴데?"

 "너, 머리... 흡, 엉망, 끄흑..."

 "재밌어?"

 "엄, 푸흡, 청."

 "그렇구나."

 한참을 웃다가 조금, 숨을 고르며 답을 하는데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하다. 침착하게 질문하는 라이넬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다정했다. 언제나처럼. 갑자기 흥이 싹 식는 기분에 끌어안은 머리를 놓아주니 라이넬은 웃고 있었다. 상냥하게.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아, 저거.

 "그럼 이제 내가 재미 볼 차롄가?"

 "아니, 잠깐, 잠깐만, 내 말 좀 듣고,"

 "들을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벗길 옷도 없고. 그렇지? 나직이, 달콤하게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은 에렌델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감하며 몸을 떨었다.

 잘못 건드렸다. 망했구나. 무어라 항변할 틈도 없이, 에렌델은 그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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